빈스 스테이플스, 당신의 래퍼는 거기에 없다
새 앨범 'Cry Baby'로 또 한 번 경계를 허문 그를 향한 엇갈린 시선
2026. 06. 17. 01:05
빈스 스테이플스가 자신을 설명하려 할수록 사람들은 그를 다시 쓰려 든다. 그의 인터뷰 반응을 충분히 읽다 보면,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고 확신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더 분노하고 정치적이어야 한다. 랩을 더 강하게 하고 히트곡을 쫓아야 한다. 갑자기 거물이 되거나 켄드릭 라마와 경쟁해야 한다. 또 하나의 「Summertime '06」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기대는 종종 모순되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빈스가 스스로 설정한 적 없는 목표로 그를 평가한다.
이런 논의는 그의 첫 독립 앨범이자 가장 의견이 갈리는 프로젝트인 「Cry Baby」 발매 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펑크, 얼터너티브 록, 라이브 인스트루멘테이션을 기반으로 한 이 앨범은 전형적인 랩 음반을 기대하던 청자를 갈라놓았다. 많은 이들이 그의 창의적 도약을 칭찬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가 10년 전 처음 사랑받았을 때의 아티스트에서 너무 멀어졌는지 의문을 품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기대라는 렌즈
「Cry Baby」를 둘러싼 논쟁은 빈스보다는 래퍼에게 거는 대중의 기대, 특히 한 우물만 파길 거부하는 흑인 아티스트들에게 쏟아지는 기대를 말해준다. 빈스는 커리어 내내 인종, 계급, 폭력, 명성, 그리고 음악 산업 자체에 대한 가정에 도전해왔다. 이번 논란은 예술적 성장이 청자에게 익숙한 범위 안에서만 일어나야 한다는 신념에 그가 다시 한 번 의문을 던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Cry Baby」를 향한 비판 상당수는 실제 음반보다 대중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빈스는 오로지 갱스터 래퍼, 롱비치 거리의 삶을 기록하는 전달자로만 등장한 것처럼 취급돼왔다. 하지만 이는 그의 음악을 처음부터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본질을 외면하는 태도다. 빈스가 갱, 죽음, 생존을 랩할 때조차 그는 그 주제들을 순수한 오락거리로 다루는 데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그런 현상을 둘러싼 구조와 공동체를 형성한 가난, 그리고 그 공동체를 버린 제도들, 흑인의 고통이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한 통찰이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Cry Baby」에 관한 많은 대화가 빈스가 예술성의 본질을 포기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은 그가 하드코어 랩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일부는 그의 인터뷰가 음악보다 흥미로워졌다고 말하며, 몇몇은 그의 최근 작업이 한때 그를 정의했던 허기를 버린 도피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빈스를 '시점'이 아니라 '배경'으로 축소시킨다. 롱비치가 이야기가 되고, 사회 비판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변주하는 사운드, 일관된 질문
하지만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다른 얘기를 한다. 「Big Fish Theory」는 많은 힙합 팬이 전자음악과 클럽 사운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던 시기에 그 장르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FM!」은 로스앤젤레스의 라디오 문화를 콘셉트 앨범으로 탈바꿈시켰다. 「Vince Staples」는 더욱 내성적이었고, 「Ramona Park Broke My Heart」는 그를 형성한 사람들과 장소를 돌아봤다. 「Dark Times」는 그 경험들을 성인으로 끌어안을 때의 정서적 무게와 맞섰다. 사운드는 변했지만, 성숙을 거듭하는 빈스의 질문들은 그대로였다.
평론가들은 여전히 빈스가 여러 해 전에 이미 벗어난, 애초에 제대로 관심조차 없었을지 모를 역할을 맡길 원한다. 거리는 결코 이야기 전체가 아니었다. 배경이었을 뿐이다. 빈스가 진짜로 파고든 주제는 그 거리를 만들어낸 세상 자체였다.
게다가 빈스가 이번 앨범에서 스스로를 움츠렸고 더 큰 명성과 부로 이어질 길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표면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이상한 지적이다. 억만장자가 되는 것이 빈스의 목표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리어 대부분을 그 시스템에 도전하는 데 바쳐온 아티스트에게 그런 랩스타의 기대를 덧씌우는 것은, 힙합에서의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청자 자신의 믿음을 비추는 행위에 가깝다.
너는 거기 속하지 않아.
You don't belong there.
Vince Staples,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서 밝힌 업계 관계자와의 대화
「Cry Baby」 발매 직후 빈스의 앨범 발매 기념 공연 클립이 온라인에 공유됐다. 그는 「Big Fish Theory」 발표 당시 업계 임원들에게 이 프로젝트를 전자음악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겠냐고 물었던 일을 떠올리며, 돌아온 대답이 "You don't belong there"였다고 전했다.
그 말은 빈스를 겨냥했을지 몰라도, 거기 담긴 정서는 낯설지 않다. 미국의 노예 해방을 기념하는 '준틴스'(Juneteenth) 주간에 접어든 지금, 수십 년간 창의성으로 이윤을 취하면서도 그 창의성이 표현될 수 있는 방식을 제한하는 산업에 의해 '네 자리'를 강요당해온 흑인 아티스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장르 전체가 흑인의 혁신 위에 세워졌지만, 문화적 뿌리에서 분리되어왔다.
록의 얼굴 뒤에 선 흑인들
록 음악은 가장 분명한 사례다. 이 장르가 백인의 반항과 반문화의 대명사가 되기 전, 시스터 로제타 타프는 가스펠에 디스토션 일렉트릭 기타를 얹었다. 척 베리는 로큰롤의 문법을 세웠고, 리틀 리처드는 퍼포먼스 자체를 뒤바꿨다. 펑크는 그 계보 위에서 탄생했고, 대중의 기억이 그 이야기를 지우려는 와중에도 흑인 아티스트들은 그 자리에 머물렀다. 디트로이트의 Death가 펑크 음악을 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청자는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워싱턴 D.C.의 Bad Brains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하드코어 밴드가 되었고, 후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역사는 「Cry Baby」를 둘러싼 대화에 특히 시의적절하게 다가온다. 록과 그 인접 장르들은 흔히 심미적 요소로 축소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언제나 더 큰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권위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기대에 대한 거부, 동조를 강요하는 제도에 맞서고 남이 정해준 자리에 머물지 않으려는 저항. 그 아이디어들은 흑인 음악이나 역사에 전혀 낯설지 않다. 오히려 그것들을 정의해온 요소다.
블루스는 노예 해방 이후 흑인에게 강요된 조건들에 도전했다. 재즈는 관습을 거부하며 미국 음악의 규칙을 다시 썼다. 소울은 시민권 운동과 얽혔다. 힙합은 정치경제 시스템에 버려진 공동체에서 태어나 좌절감을 예술, 언어, 정체성으로 탈바꿈시켰다. 저항은 흑인 음악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 중 하나다.
경계를 허무는 동시대인들
빈스는 결코 홀로 그 경계를 시험한 게 아니다. Rico Nasty는 펑크 에너지와 랩을 수년간 섞어내며 끊임없이 '너 어디 소속이야'라는 질문에 맞섰다. Denzel Curry는 자신의 커리어 전반에 걸쳐 펑크, 메탈, 재즈, 얼터너티브의 요소들을 통합했다. Lil Uzi Vert의 록 영향과 얼터너티브 감성 수용은 진화가 아닌 랩으로부터의 이탈로 취급받곤 했다. André 3000은 플루트를 집기 훨씬 전부터 비슷한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매 세대는 장르의 경계를 시험하려는 흑인 아티스트들을 배출하고, 동시에 그들을 되돌리려는 청중을 만들어낸다.
빈스는 언제나 '시스템'에 집착해왔다. 그의 작품 곳곳에 폭력이 등장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폭력을 생산하는 조건이다. 그 시선은 놀랍도록 일관적이었다. 그 일관성이 쉽게 간과되는 이유는 빈스가 사운드적으로 결코 반복하지 않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엮는 실타래는 장르가 아니라 질문이다. 폭력의 이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생존이 정체성이 되어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배제하고 설계된 시스템을 헤쳐 나가는가. 성공은 과연 무엇을 해결하는가.
그를 단순히 갱스터 래퍼로 축소하는 것은, 굳이 그 정도로까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 그의 음악을 대하는 무책임한 평가다. 그럼에도 빈스는 이런 딜레마에 직면한 최초의 아티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Hov'가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면 놈들은 '왜?'라고 반응하지. 내 옛날 음악을 원하면 옛날 앨범을 사라고.
Hov' on that new sh*t, n*ggas like 'How come?' N*ggas want my old sh*t, buy my old albums.
Jay-Z, Jay-Z의 곡 가사에서
Jay-Z는 수년 전 이미 이 문제를 정확히 짚었다. 이 한 줄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음악가들을 따라다닌 현상을 정의한다. 청중은 이론적으로는 성장을 환영하지만 실제로는 거부한다. 처음 리스너와 연결된 앨범이 이정표가 되고, 이후의 모든 프로젝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아티스트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힙합 안에는 사례가 널렸다. 팬들은 Nas가 「Illmatic」을 재현하길 원했고, Lil Wayne이 「Tha Carter III」 시대에 머물길 바랐다. Tyler, The Creator는 Odd Future에서 처음 관심을 끌었던 자신의 초기 이미지에 갇히지 않으려는 거부감으로 완전히 새로운 커리어를 써내려갔다. 하지만 그 예술적 위험들은 오늘날 그들의 유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으로 평가된다.
Jay-Z는 절대 「Reasonable Doubt」을 두 번 만들지 않았을 것이고, Janelle Monáe는 평생 「The ArchAndroid」만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흑인 음악의 역사는 제자리를 지킨 이들이 써내려간 적이 없다. 그 역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오해받는 위험을 감수한 이들에 의해 빚어져 왔다. 「Cry Baby」는 청중이 받아들이든 말든 바로 그 전통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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